[안정효의 Q-English]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 ||
입력: 2008년 09월 17일 15:06:43 | ||
요즈음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 여러 명이 함께 진행하는 오락물을 보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어휘와 표현을 뒤집고, 변형시키고, 튀겨내어 대화를 이어나가는 젊은이들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것은 혼자서 말솜씨를 부리는 웅변이나 서술적 수사학보다는, 대화에서 타인들이 전개하는 돌발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즉흥적 기교를 필요로 하는 화법이다.
우선 catch라는 단어에 어떤 catch(함정)가 꼭꼭 숨어 다니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거의 모든 단어가 그렇듯이 catch에도 “붙들자, 잡다, 쥐다”라는 기본적인 의미 말고도 일상생활에서 자주 활용되는 몇 가지 다른 용법이 있다. 이렇게 말이다.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에서는 딸 나탈리 우드가 워런 비티와 결혼하기를 바라면서 어머니가 “He’d be the catch of a lifetime, dear”라고 말한다. “그 애를 잡으면 일생일대의 횡재나 마찬가지란다”라는 뜻이다. catch는 낚시에서 “잡은 물고기”를 뜻하고, catch of a lifetime은 “평생 최고의 대어(大漁)”다. 향토문화를 다루는 방송에서는 큰 물고기를 보면 젊은 방송인들이 무작정 ‘월척(越尺)’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우리말도 그렇게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월척’은 붕어 오직 한 가지 물고기에만 적용된다. 뱀장어나 바닷고기는 작은 새끼들 중에도 ‘월척’이 부지기수여서, ‘월척’이라는 명칭이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어쨌든 위 예문에서도 catch는 잡거나 낚는다는 개념에서 발전한 ‘대박’의 의미가 강하지만, ‘백악관 탈출(The President’s Analyst)’에서는 그 성격이 좀 달라진다. 대통령이 심한 긴장감에 시달린다는 백악관 전속 정신과의사 제임스 코번의 얘기를 듣고 그의 무식한 애인 조운 딜레이니가 걱정한다. “Anxieties ―are they catching?”(불안감이라는 그거―혹시 전염되는 건가요?) 이것은 사람이 병을 잡는 것이 아니라, 병이 “사람을 잡는” 경우를 뜻한다. 그러나 catch의 여러 의미 속에 숨겨진 가장 기막힌 catch는 catch-22에서 발견된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catch인지를 설명하겠다. 미국에서 말론 브랜도, 폴 뉴먼, 제임스 딘이 반항의 시대를 열어가던 1950년대에 영국에서는 Angry Young Men(성난 젊은이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영국 반항아의 이기적이고 소외된 삭막한 삶을 통렬하게 그려낸 소설이 존 브레인(John Braine, 1922~86)의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브레인이 57년에 발표한 대표작을 영화로 만든 ‘산장의 밤(Room at the Top)’에는 돈과 출세밖에 모르는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로렌스 하비는 중년의 유부녀 시몬 시뇨레와 관능적인 불륜의 관계를 계속하면서도 출세의 기회를 노리며 부잣집 딸과 결혼하기 위해 해더 시어스를 끈질기게 유혹한다. 이런 사악한 의도를 파악한 시어스의 아버지가 로렌스 하비를 단둘이 만나서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러자 하비가 묻는다. “Is there a catch somewhere? Are you trying to buy me off?”(무슨 함정이라도 숨겨져 있나요? 날 돈으로 매수할 속셈인가요?) 여기에서 catch는 미끼 속에 숨겨진 낚싯바늘이나 생선을 먹다가 목에 걸리는 가시처럼, 자칫하면 톡톡히 손해를 보게 만드는 상황이나 물건, 즉 “걸고 넘어가는 숨겨진 함정”을 뜻한다. 낭만적인 희극 ‘휴가(Holiday)’에서도 catch의 비슷한 용법을 선보인다. 인생을 어느 만큼은 자기 자신을 위해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 캐리 그랜트가 캐서린 헵번에게 털어놓는다. “I want to save a part of my life for myself. And there’s a catch to it, though. It’s got to be a part of the young part.”(난 인생에서 나 자신을 위해 한 토막은 떼어두고 싶어. 그리고 거긴 조건이 하나 따라붙지. 그 토막은 젊은 시절의 한 토막이어야 한다는 거지.) 이쯤 되면 catch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까다로운 조건”임이 분명해진다. 한 가지 예를 더 들겠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A Matter of Life and Death)’에서 불타는 비행기와 함께 추락하던 데이빗 니븐이 지상에서 근무하는 미국 여군 킴 헌터와 무전 교신을 한다. “Yes, June, I’m bailing out, but there’s a catch. I‘ve got no parachute.”(그래요, 준, 난 뛰어내려야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요. 난 낙하산이 없어요.) 이 ‘문제’는 정말로 예사롭지 않은 문제다. 낙하산이 없는 니븐은 뛰어내려도 죽고, 뛰어내리지 않아도 죽어야 할 상황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 catch-22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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