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Q-English]냉큼 말하거나 총으로 쏘거나 | ||
입력: 2008년 07월 30일 15:19:23 | ||
셜리 템플 영화 ‘서니브룩 농장의 레베카(Rebecca of Sunnybrook Farm)’에 등장하는 어느 청년은 여가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아 “Lola, there’s something I’ve been wanting to tell you”(롤라, 난 벌써부터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라는 말밖에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답답해진 여가수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Let’s have it. Shoot.”(우리 속 시원하게 해결합시다. 쏘세요.) 이 말을 듣고 총을 꺼내 여자를 쐈다가는 큰일이 난다. 우리말에서도 ‘쏜다’가 한턱을 ‘낸다’는 속어로도 쓰이듯이, 영어에서는 shoot이 속어로 쓰이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이기는 하지만 법정에서 증인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친 젊은 날의 링컨 말고도 언어의 희롱을 한 대통령이 몇 명 더 있는데, ‘거짓 속의 진실(Wrong Is Right)’에 나오는 미국 대통령 조지 그리자드는 위 예문에 소개한 shoot의 용법으로 pun을 한다. 솔직하게 의견을 말해도 되겠느냐는 CIA 국장에게 대통령은 “Shoot, Jackie, and aim at Mallory.”(그래, 재키, 하지만 겨냥은 맬러리한테 하라고.)라고 한다. 이 장면에서도 CIA 국장은 권총을 뽑지 않는다. shoot이 속어로 “어서 냉큼 말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shoot에서는 “총으로 쏴서 죽이다”라는 의미도 유효하다. 그러니까 그리자드의 말은 “쏴 죽이는 건 좋지만 총은 맬러리를 겨눠”라는 제2의 의미가 담긴 pun이다. 맬러리는 야당 대통령 후보 레슬리 닐슨의 극중 이름이다. 알라모 요새 앞에서 유세를 할 때도 그리자드 대통령은 21발의 축포가 울린 다음, 비록 pun은 아니지만, shoot이라는 단어로 (빗나간) 겨냥에 대해서 또다시 quip한다. “Twenty-one shots, by golly, and they missed me every time.”(맙소사, 스물한 발이나 쏘면서도 날 한 번도 맞히지 못하는구먼.) 독자들도 잘 알겠지만, 축포는 살상용이 아니다. 인기 특파원 숀 코너리가 캐더린 로스에게 장난스러운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도 같은 영화에 나온다. “I was an actor, and a coal miner, and a bartender, and a sailor, and a soldier of misfortune.”(난 배우에, 광부에, 바텐더에, 뱃놈도 했고, 병정놀이도 좀 했어.) 영어의 말장난을 우리말로 옮기는 고충은 soldier of misfortune 같은 경우가 좋은 표본이겠다. 영어에도 아예 없는 이런 단어를 우리말로 만들어내야 하니 말이다. soldier of misfortune이라니까 얼핏 “불운의 병사”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이것은 soldier of fortune을 장난스럽게 뒤집어놓은 조어적(造語的) 표현이다. soldier of fortune은 ‘용병(傭兵, mercenary)’이라는 뜻인데, fortune에다 mis-라는 부정형 접두어를 붙여놓은 코너리의 말투로 미루어보아 그의 용병 경력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필자는 번역에서 “제대로 군인 노릇을 못했다”는 의미로 ‘병정놀이’라는 표현을 써보았다. soldier of fortune에는, fortune이 adventure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혈기 왕성한 모험가(adventurer)’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misadventure 또한 접두어 mis-가 붙는 단어 가운데 매우 재미있는 단어에 속한다. misadventure를 영한사전에서는 ‘불운한 일’이나 ‘불행’ 또는 ‘재난’이라고 풀어놓았는데, 그보다는 훨씬 감칠맛이 담긴 말이다. adventure(모험)를 하고 싶기는 한데 하는 일마다 재수가 옴이라도 붙었는지 사사건건 비틀어지는 경우를 misadventure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낭패’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mischief(짓궂은 장난)도 참 맛나는 mis-단어다. 그리고 프랑스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바바렐라(Barbarella)’에서는 지구 대통령이 화상통화를 하며 41세기 나체의 여전사(adventuress) 제인 폰다에게 mischievous(짓궂은) 작업을 건다. “One day, Barbarella, we must meet in the flesh.”(언젠가 기회가 되면, 바바렐라, 우리 직접 한번 만나야 되겠어요.) in the flesh는 ‘실물’이나 ‘장본인’이라는 뜻이다. ‘물랭 루즈(Moulin Rouge)’를 보면 전람회장에 툴루즈-로트렉이 나타나자 화상(畵商)이 “Here he is, in the flesh”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in person, 즉 그분이 “몸소 왕림하셨다”는 말이다. 하지만 ‘바바렐라’ 예문의 in the flesh는 “육체의 만남”이라는 암시가 담긴 용법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 in flesh(살쪄서, 뚱뚱해져서)는 in the flesh와 의미가 크게 다르다. 사람들은 정관사나 부정관사를 하찮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에 나오는 대통령의 말씀을 들어보기로 하자. 핵전쟁이 터질 위기를 맞아 대책회의를 하던 중에 조지 C 스캇 대장과 소련 대사가 몸싸움을 벌이자 피터 셀러스 미국 대통령이 야단을 친다.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여러분, 여기선 싸우면 안 됩니다. 여긴 상황실이에요.) 대통령의 말이 웃기는 까닭은 ‘상황실(war room)’을 고지식하게 번역하면 “전쟁의 방”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방에서 싸우지 않는다면 어디서 싸우라는 말인가? |
--- English ---/Have a F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