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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Q-English]그녀의 Hip, 그녀는 짝궁둥이?

[안정효의 Q-English]그녀의 Hip, 그녀는 짝궁둥이?
입력: 2008년 08월 13일 15:13:13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slapstick을 ‘엎치락뒤치락하는 희극’이라고 정의했다. slapstick이라면 선방(禪房)에서 스님들이 사용하는 죽비처럼 나무 막대기 두 개를 묶은 딱딱이로, 희극 공연에서 서로 때리더라도 소리만 크고 별로 아프지 않은 무대 소도구였다. 그래서 자칫 slapstick이 시끄럽기만 한 ‘저질 코미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특히 할리우드 희극의 경우, 우리는 눈으로 동작만 보면서 그런 오해를 하기 쉬운데, 귀로 잘 들어보면 이들 ‘죽비 희극’의 대사 역시 상당히 차원이 높은 지적 문학성을 과시한다.

slapstick의 대가로서 20세기 중반을 풍미했던 막스 브러더스 영화 ‘풋볼대소동(Horse Feathers)’을 예로 들겠다. 신임 대학 총장 그라우초 막스에게 여비서가 사무실로 들어와서 전한다. “The Dean of Science says he’s tired of cooling his heels out there.”(바깥에서 기다리다 ‘발뒤꿈치가 얼겠다’고 이과대학장님이 그러시네요.)

cool [one’s] heels(발뒤꿈치가 식어버리다)는 구어로 면회나 면담을 위해 ‘지겹도록 오래 기다리다’, 그러니까 ‘진이 빠져 죽겠다’라는 뜻이다. 총장실 안에서 두 명의 교수를 불러다 앉혀놓고 한참 혼을 내던 그라우초가 cooling heels라는 표현을 그대로 되받아 여비서에게 pun으로 quip한다. “Tell him I’m cooling a couple of heels in here.”(나도 여기서 두 사람 ‘발뒤꿈치 얼리느라’ 바쁘다고 전해.)

그러나 여기서 ‘얼리는 발뒤꿈치’는 완전히 뜻이 달라서, cool은 속어로 ‘죽이다’ 또는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는 뜻이고, heel은 ‘비열한 녀석’이나 ‘못된 놈’을 가리킨다. 잠시 후에는 얼음을 들고 들어온 하포에게 그라우초가 꾸짖는다. “That’s a fine way to carry ice. Where are your tongs?”(한심하게 얼음을 들고 다니다니. 집게는 어디 두고 말야?) 야단을 맞은 하포가 “어디 두긴, 여기 있는데”라는 뜻으로 혓바닥을 내밀어 보인다. homophone(동음이의어)인 tong(집게)과 tongue(혓바닥)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하포가 헷갈린 것이다.

중요한 주의사항 하나. tong은 단수로 쓰면 한자 ‘당(黨)’에서 연유한 단어로서 ‘조합’이나 ‘결사’ 따위의 비밀단체를 가리킨다. 커다란 가위처럼 생긴 얼음집게는 꼭 복수형으로 tongs라고 써야 한다. scissors도 마찬가지여서, 꼭 복수형으로 써야 옳고, scissor는 ‘가위질하다’라는 동사나 ‘가위의’라는 형용사다. ‘바지’도 가랑이가 둘이어서 꼭 trousers라고 해야 하며, 그냥 trouser라고 하면 바지의 한 쪽 가랑이를 뜻하거나 ‘양복 바지의’라는 형용사가 된다. 안경 또한 알이 둘이어서 glasses라 해야 하고, 단수로 glass라고 쓰면 ‘유리’나 ‘술잔’이라고 의미가 달라진다. 역시 ‘안경’을 뜻하는 spectacles도 단수로 쓰면 ‘구경거리’가 된다.

정말 웃기는 한국 영어는 ‘힙’이다. 엉덩이는 두 개가 한 쌍이어서, 외국인과 얘기를 나눌 때는 꼭 복수형으로 hips라고 해야 한다. 엉덩이가 한 쪽뿐인 짝엉덩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냥 hip이라고 하면 속어로 ‘유행에 밝은(fashionable 또는 stylish)’이라는 엉뚱한 의미로 변한다. 한국사람들끼리 매우 자주 사용하는 수많은 국산 ‘영어’ 단어 가운데 하나인 ‘매너’도 마찬가지다. manner는 그냥 ‘방법’이라는 말이고, ‘예절’은 꼭 복수형으로 manners라고 해야 옳다.

또다른 장면에서는 그라우초가 서명이 없는 계약서를 보이며 하포를 꾸짖는다. “This is illegal. There’s no seal. Where’s the seal?”(이건 법적 효력이 없어. 날인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도장 어디 뒀지?) 그랬더니 하포가 나가서 물개를 안고 다시 들어온다. seal은 ‘도장’이면서 ‘물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임금님들이 국가의 상징으로 삼았던 ‘옥새’도 (royal) seal이며, 낙관(落款) 역시 seal이라고 한다. 그리고 물론 하포가 안고 들어온 ‘물개’도 seal이다.

노예선으로 끌려갔던 벤허가 해전이 벌어지는 동안 퀸터스 아리우스 제독의 생명을 구해주고 양자가 된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 복수를 위해 메쌀라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우리는 seal이 무엇인지를 모처럼 구경할 기회를 얻는다. 선물로 멋진 단검을 받은 메쌀라가 “퀸터스 아리우스에게 아들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라고 하자, 벤허가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You are wrong, Messala”(자네가 잘못 알았지)라고 말하고는 필기판을 집어들어 손가락에 낀 반지를 콱 찍어 보여주며 묻는다.

“You know his seal?”(아리우스의 seal은 자네도 알아보겠지?) seal(封印)은 중요한 편지나 서류를 남들이 뜯어보지 못하게 붉은 밀랍을 녹여 봉한 다음에 찍는 ‘도장’을 의미하는데, 퀸터스 아리우스가 양자 벤허에게 물려준 것처럼 반지에 조각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