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Q-English]빤히 알면서도 딴전 부리며 웃기기 | ||
입력: 2008년 06월 25일 14:28:00 | ||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에서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 못난 마법사에게 주디 갈란드가 따진다. “You’re a very bad man.”(아저씨는 아주 나쁜 사람예요.) 마법사가 quip한다. “No, my dear, I’m a very good man. I’m just a very bad wizard.”(아니란다, 얘야, 난 아주 좋은 사람이야. 형편없는 마법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빤히 알면서도 딴전을 부리는 웃기기 기법은 유쾌한 영국 영화 ‘앞으로만 가는 여자(I Know Where I’m Going)’에서도 나온다. 언제쯤 날씨가 걷히겠느냐는 웬디 힐러에게 바닷가 마을의 뱃사람이 quip한다. “How long will the gale last? Just as long as the wind blows, my lady.”(폭풍이 언제까지 불 꺼냐고? 바람이 부는 동안밖에는 안 불어, 이 아가씨야.) 폭풍도 가지가지지만, gale은 초속 13.9~284m로 바다에서 부는 강풍을 뜻한다. ‘도로티 댄드릿지의 영광과 좌절’에서 대리인 얼 밀스가 좌절감에 빠져 지내던 그녀를 오랜만에 찾아온다. 비위가 상한 댄드릿지가 독설을 서슴지 않는다. “You got so old. When did you get so old?”(당신 폭삭 늙었구만. 언제 그렇게 늙었어요?) 밀스가 경쾌하게 받아넘긴다. “This morning.”(오늘 아침에.) 논쟁에서 고지식하게 화를 내는 화법(話法)은 참으로 미련하다. 목에 힘을 주면 힘 주는 사람만 피곤하다. 감정을 통제하고 말을 길잡으면 자신의 품격이 고상해지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서 화를 안 내는 사람은 언쟁에서 이기기가 훨씬 쉽다. ‘나의 길을 가련다(Going My Way)’에서 세상물정을 하나도 모르면서 가출한 18세 철부지 아가씨가 혼자서 살아갈 자신이 만만하다고 큰소리를 친다. 빙 크로스비 신부는 목에 힘을 주고 훈계하는 대신 우회적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You know, when I was eighteen, I thought my father was pretty dumb. After a while, I got to be twenty-one and I was amazed to find how much he learned in three years.”(나도 말이지, 열여덟살 땐 우리 아버지가 상당히 멍청하다고 생각했어. 시간이 좀 지나서 스물한살이 된 나는 그 사이에 아버지가 얼마나 똑똑해졌는지 깨닫고는 무척 놀랐단다.) 물론 3년 사이에 ‘똑똑’해져서 세상물정을 알게 된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크로스비 자신이었다. “네까짓 게 그 나이에 세상을 뭘 아느냐”고 면박을 주는 대신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quip이 돋보인다. 논쟁에서는 논리와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이렇게 화법으로 이기는 설득도 가능하다. 인내심이 없고 마음이 각박한 요즈음 세상에서 자녀교육에 적용해 볼만한 변칙이다. “그 나이”에는 아무리 이성적인 논리로 설명해도 이왕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선인장꽃(Cactus Flower)’에는 “그 나이”의 청년이 등장한다. 옆집에 사는 극작가 지망생 릭 렌츠가 골디 혼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라. “I write very advanced plays. All the actors keep the clothes on, and public is not quite ready for that yet.”(난 아주 진보적인 희곡을 씁니다. 배우들이 모두 옷을 입은 채로 나오는데, 일반 대중은 아직 그런 연극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었죠.) 렌츠의 화법은 뒤집어서 거꾸로 말하는 sarcasm(비꼬기)이다. 진보적인 작품이라며 너도나도 옷을 홀랑 벗고 나오는 배우들이 대단히 ‘실험예술적’인 체하는 풋내기 세태를 렌츠는 꼬집는다. 그러니까 그는 ‘진보적’이 아니라 지극히 보수적(conventional, conservative)인 정통 극작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한다. sarcasm에서 악의적인 비꼬기의 요소를 제거하면 humor(해학)가 된다. 필자는 어릴 적에 ‘웃음보따리’라는 책에서 이런 얘기를 읽었다. 여인숙에 손님이 들었는데, 주인이 지어준 밥에 돌이 많아서 자꾸 손님이 우지끈 씹었다고 한다. 1950년대에만 해도 우리나라 쌀에는 돌이 많아서 밥을 짓기 전에 밥상에 쏟아놓고 우선 돌부터 골라내고는 했었다. 어쨌든 미안해진 주인이 손님에게 “밥에 돌이 많죠?”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손님은 “아뇨, 쌀이 더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만일 이때 손님이 화가 나서 악의적으로 그 말을 했다면, 그것은 sarcasm이다. 하지만 주인이 미안해할까봐 그냥 웃어 넘기기 위해 같은 말을 했다면, 그것은 humor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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