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Q-English]세 치 혀 칼날처럼 휘두르는 ‘언어 결투’ | ||
입력: 2008년 06월 11일 13:47:06 | ||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등 이른바 ‘쥐떼(Rat Pack)’라는 유쾌한 별명으로 한때 할리우드에 군림했던 인기 배우들을 총망라한 ‘오션과 11인의 전우(Ocean’s Eleven, 1960년)’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치는 걸작 영화였다. 그리고 이 작품을 새로 만든 ‘오션스 일레븐’은 원작 못지않게 화려한 출연진뿐 아니라 불꽃 튀는 대화가 돋보인다. 감옥에 간 사이에 변심하고 앤디 가르샤의 애인이 되어버린 아내 줄리아 로버츠를 식당에서 만난 조지 클루니가 로버츠에게 아주 고상한 화법으로 시비를 건다. “I always confuse Monet and Manet. Which one married his mistress?”(난 모네와 마네가 늘 헷갈려. 숨겨두었던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 누구지?) 정절을 지키지 못한 아내 로버츠를 은근히 힐난하는 의미로 클루니는 한때 즐겁게 데리고 놀아나던 정부(情婦)와 끝내 결혼해버린 화가를 느닷없이 입에 올려 “당신도 그런 부류의 여자”라고 슬그머니 견준다. 눈치가 9단인 로버츠는 “Monet”라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그냥 넘어가려 하지만 클루니는 “지저분한 인간”이라는 주제를 계속 물고 늘어진다. “And Manet had syphilis.”(그리고 마네라는 친구는 매독에 걸렸고.) 참다 못해 로버츠가 침착하게 한 마디 한다. “They also painted occasionally.”(그 사람들 가끔 그림도 그렸지.) 로버츠가 이 얘기를 한 까닭은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당신처럼 인간의 지저분한 면만 보려고 하는 남자라면 숨겨놓은 여자와 매독에나 관심이 쏠리겠지만, 나처럼 고상한 여자는 화가라고 하면 예술부터 생각하지”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식으로 어떤 사람의 공박을 재치있게 넘기거나 몰상식한 상대를 고상한 말로 은근히 놀리는 경우에 quip이라는 표현이 제격으로 어울린다. 이른바 “도수가 높은 화법”이기 때문에 감각이 무딘 사람은 클루니와 로버츠가 주고받는 대화에서 행간을 읽어내기가 힘들겠고, 그래서 화법이 세련되지 못한 사람은 누가 비꼬아 놀리면 그 반어적(反語的)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해서 모욕을 당하고도 바보처럼 히죽거리며 웃기가 십상이다. quip이 어떤 화법인지를 보다 잘 이해하려면 같은 영화에 나오는 다음 대화를 살펴보기 바란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인 모네와 마네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로버츠는 어느새 슬그머니 열을 받고, 그래서 노골적인 공격을 감행한다. “You’re a thief and a liar.”(당신은 도둑에 거짓말쟁이잖아.) 결혼할 때 자신의 ‘직업’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던 클루니가 수세를 취한다. “I lied about being a thief. I don‘t do that any more.”(도둑이라는 사실을 내가 속이기는 했지. 요즈음에는 그런짓 안 해.) 로버츠가 묻는다. “Steal?”(도둑질을 안 한다고?) 클루니가 당장 보복의 반격을 한다. “Lie.”(거짓말을 안 한다고.) 도둑질은 그가 오랫동안 열심히 솜씨를 갈고 닦아 와서, 퍽 자랑스러워 하는 멋진 직업이기 때문에 클루니로서는 포기할 수가 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로버츠에게 접근하는 까닭은 그녀의 애정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지노를 털려는 계획에 그녀를 끌어넣으려는 욕심에서다. 하지만 “거짓말은 안 한다”는 말은 이제 그가 도둑이라는 것은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어서 거짓말을 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클루니는 무엇 하나 달라지지도 않았고, 물러서려는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에 줄리아 로버츠는 조지 클루니에게 다시 얄미운 반격을 감행한다. “You know what your problem is? You’ve met too many people like you. I’m with Terry now.”(당신은 뭐가 문제인지 알아? 당신은 자신과 똑같은 부류하고만 너무 많이 어울려. 난 이젠 테리가 좋아졌어.) 앤디 가르샤(테리)에게 아내를 빼앗긴 클루니가 따진다. “Does he make you laugh?”(그 친구 [나처럼 당신을] 잘 웃겨?) 로버츠가 quip한다. “He doesn’t make me cry.”([당신처럼 나를] 울리지는 않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다수가 quip이라는 단어를 난생 처음 구경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이 사전을 찾아봤다면, 이 정도의 설명이 나온다 ― 명사의 경우 “경구, 명언; 빈정거리는 말, 신랄한 말; 회피의 말, 둔사(遁辭), 핑계; 기묘한 것”, 그리고 동사의 경우 “빈정거리다, 비꼬다, 놀리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여기에서처럼 예문을 통해서 실제로 ‘경험’해보기 전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전의 ‘풀이’에서는 낱단어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구체적인 모습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세 가지 상황에서 보면, 두 인물이 신랄하고 긴장된 분위기에서 흥미진진하게 언어의 공방전을 전개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세 치의 혀로 칼날처럼 찔러대는 결투를 quip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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