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Q-English]카이사르와 스핑크스는 ‘W’했다 | ||
입력: 2008년 05월 28일 14:52:58 | ||
18년 동안이나 공동작업을 했던 미국의 작사가 앨런 제이 러너와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리츠 뢰베는 ‘지지(Gigi)’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 같은 명작을 많이 남겼는데, 그들의 첫 성공작이었던 환상적 음악극 ‘브리가둔(Brigadoon)’의 도입부에 해설을 겸해 소개하는 노래를 들어보면 왜 그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Brigadoon blooming under sable skies, There my heart forever lies.” (검은 하늘 밑에서 꽃피는 브리가둔 내 마음은 영원히 그곳에 가 있노라.) 이 노래에서는 첫 행에 Brigadoon과 blooming(만발하는) 그리고 sable skies 이렇게 두 종류의 두음이 나란히 나온다. sable은 ‘흑색’과 ‘상복’을 뜻하는 시어(詩語)다. ‘흑색 하늘’이라면 쉬운 말로 ‘밤하늘(night sky)’이겠는데, 굳이 문어(文語)적인 표현을 쓰려면 night는 nocturnal, 그리고 sky는 firmament라고도 한다. 하지만 skies의 s와 두운을 맞추기 위해 그런 단어를 선택했다. 윤기가 흐르는 sable(검은담비)의 털로 뒤덮인 밤하늘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그뿐이 아니라 첫 행의 마지막 단어 skies와 2행의 마지막 단어 lies는 ies로 운(rime)까지 맞춰 couplet(2행 聯句)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글쓰기에서 이런 주옥 같은 시어를 함부로 쓰면 다른 단어들과 궁합이 안 맞아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워질 때가 많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집으로 간다”는 말 대신에 “주거지로 행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러너와 뢰베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진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틴 2세가 공동작업한 고전 뮤지컬 ‘오클라호마(Oklahoma!)’에 등장하는 글로리아 그레이엄은 남자라고만 하면 상대가 누구이건 가리지 않고 사족을 못 쓰며 마구 달려든다. 그리고 그레이엄은 그 이유를 셜리 존스에게 솔직히 고백한다. “I like it so much when a fella talks pretty to me, I get all shaky from horn to hoof.”(난 남자가 예쁜 말만 하면 환장을 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덜덜 떨린다니까.) 고전 작품일수록 영화는 화법이 문학적이고, 그래서 예술적인 두운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사람들은 흔히 from head to toe(머리끝부터 발끝까지)라고 말하지만, 해머스틴은 일부러 두운을 찾아내어 from horn to hoof(뿔에서부터 발굽까지)라고 돌려 붙인다. 등장인물이 작가인 경우에도 영화의 대사를 들어보면 성격 구성(characterization)을 위해 문학적인 말투를 여기저기 삽입하게 마련이다. ‘고독한 곳에서(In a Lonely Place)’를 보면 경찰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 준 앞집의 무명 여배우 글로리아 그레이엄에게 영화작가 험프리 보거트가 이런 두운을 쓴다. “When you first walked into the police station, I said to myself: There she is. The one that is different. She‘s not coy or cute or corny. She’s a good guy. I‘m glad she’s on my side.”(당신이 처음 경찰서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난 이런 생각을 했지. 저 여자 좀 보라고. 뭔가 달라. 애교를 떨거나 귀엽거나 촌스러운 구석이 없잖아. 좋은 녀석이야. 저런 여자가 내 편이라니 고맙기도 하지.) 두운으로 뽑아낸 coy, cute, corny는 일반적인 여성을 조금쯤은 비하하여 유형화한 표현으로서, “여성의 3C”라고 해도 되겠다. coy는 내숭을 담은 교태를 의미하고, cute는 ‘귀여운’이다. 본디 여성을 묘사하던 이 형용사 cute는 요즈음 남성에게도 많이 적용한다. 위 예문에서 ‘남자’를 뜻하는 guy가 여성에게도 쓰이게 된 것과 똑같은 unisex(성적 무차별) 현상의 결과라고 하겠다. 이런 현상은 20세기 중반 여성해방운동에서 비롯되었다. corny는 할리우드 코미디의 한 분야를 지칭하는 cornball(촌뜨기, 고리타분하고 감상적인 사람)과도 같은 의미다. ‘싸구려’나 ‘진부한’ 생각이나 행동 따위에도 이 표현을 쓴다. corn(옥수수)을 시골사람에게 비유한 화법은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방인을 ‘감자’에 비유했던 편견과 같은 맥이다. 생일선물로 독일로부터 폭탄을 날려 보내줘서 고맙다고 히틀러에게 공개편지를 썼을 정도로 장난기가 심했던 에이레의 극작가 조지 버너드 쇼의 1899년 희곡을 영화로 만든 ‘시저와 클레오파트라(Caesar and Cleopatra)’에는 시에 가까울 정도로 두운을 한껏 활용한 대사도 등장한다. 카이사르(클로드 레인스)가 어둠 속에서 스핑크스에게 하는 말이다. “I wander, and you sit still. I conquer and you endure. I walk and wander, you watch and wait.”(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너는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구나. 나는 정복하고, 너는 인내한다. 나는 걷고 돌아다니지만, 너는 구경하며 기다리기만 한다.) 세 번째 문장에서 네 개의 w가 두운을 맞추는가 하면, 세 문장이 모두 대비법의 균형을 이루고, 두 번째 문장에서는 conquer(정복하다)와 endure(인내하다)가 운까지 맞는다. 역시 대가다운 솜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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