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English ---/Have a Fun!

[안정효의 Q-English]화장실, 변소 그리고 뒷간 

[안정효의 Q-English]화장실, 변소 그리고 뒷간                  
입력: 2008년 05월 07일 13:49:57
첫 회의 모두에서 필자는 영어공부에서 어휘력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 바가 있는데, 회화와 발음 위주로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약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난 주일 ‘특공 그린 베레(The Green Berets)’에 등장했던 Provo Privy(프로보 화장실)라는 두운의 묘기 또한 어휘력이 풍부하지 않고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실’이라면 고등학교는 물론이요, 하다못해 농촌의 ‘푸세식’ 뒷간 문짝에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W.C.라고 써놓고는 했었다. 어느 스님은 식당에 들렀다가 해우소(解憂所) 문짝에 써놓은 이런 글귀를 보았다고 한다. “다블유시(多不有時).” 물론 ‘W.C.’를 한자로 기발하게 표기한 솜씨다.

비슷한 여러 영어 단어에 대해서 우리말 단어를 달랑 하나만 알아두고는 아무데서나 그 단어를 들이대는 이런 습성은 정말로 위험하고 무책임한 짓이다. 우리말에서 ‘화장실’과 ‘변소’와 ‘뒷간’이 저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듯이, 영어도 호텔의 화장실과 가정집의 변소, 그리고 농가의 뒷간을 가리키는 말이 저마다 다르니까, 잘 가려서 써야 한다. 위에서 지적한 W.C.만 해도 water closet(수세식 화장실)이라는 뜻이어서, ‘화장지’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생겨나기도 전, 옥수숫대나 새끼줄로 밑을 닦던 시절의 시골 뒷간에 그런 간판을 내거는 짓은 과장광고나 사기행위에 해당되겠다.

참고로 ‘수세식(water closet)’은 flush toilet이라는 표현을 한층 더 널리 쓰며, ‘변소’라는 뜻의 고상한 단어 lavatory는 수세식 변기에 손을 씻는 시설까지 갖춘 위생적인 곳이고, 같은 라틴어 어원에서 나온 latrine은 야전이나 공장 또는 학교 따위의 공공시설에 딸린 ‘화장실’이며, 가정집의 화장실은 완곡어법으로 washroom(세수실)이나 bathroom(욕실)이라고 한다. 호텔이나 역 또는 은행처럼 비교적 격식을 갖추려는 시설에서는 rest room(휴게소)이라고 딴전을 부리거나, 남녀를 구분하여 men’s room(남자들의 방)과 ladies’ room(여인들의 방) 또는 그냥 men이나 women이라고 문짝에 적어 놓는다. 공중화장실은 communal lavatory 또는 public comfort station(공공 해우소)이라고 점잔을 뺀다. 속된 말로는 john이나 loo 또는 convenience나 can이라고 한다. 선박이나 군함의 화장실은 head 또는 join이라 하고, 옥외에 따로 짓는 뒷간은 outhouse(바깥채)나 backhouse(뒤채) 또는 privy(은밀한 곳)라고 한다. 프로보 병장의 이름과 두운이 맞는 뒷간 하나를 영어로 찾아내는 데만 해도 이 정도로 거창한 어휘력이 필요해진다.

그러면 이제는 이런 기법이 실제 대화에서는 어떻게 쓰이는지 몇 가지 다양한 예를 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두운은 제목과 광고문안뿐 아니라 속담이나 명언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인용문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고원의 방랑자(High Plains Drifter)’에서는 무책임한 겁쟁이 보안관이 목욕을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찾아와서 눈치를 보며 이런 말로 화해를 청한다.

“Forgive and forget―that’s our motto.”

“용서하고 잊어버리자 ― 그게 우리 좌우명이죠”라는 이 말에서 forgive and forget은 f로 시작하는 두운법이다.

‘알라모(The Alamo)’에서도 멕시코군과의 전투를 끝내고 나면 로렌스 하비 중령과 결투를 하겠다고 벼르는 리처드 위드막에게 존 웨인이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You are not much for this forgive-and-forget business, are you, Jim?”(자넨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그런 일엔 별로 소질이 없겠지, 짐?)

이 문장에서 be much for는 “크게 관심을 갖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this는 “거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거” 정도로 슬그머니 둘러댈 때 잘 쓰는 지시대명사다.

‘살인광시대(Monsieur Verdoux)’의 주인공 찰리 채플린은 여자들을 등쳐먹는 푸른수염(Bluebeard)과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원제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푸르스름한’을 뜻하는 verdaud(베르도)와 비슷한 Verdoux(베르두)다. 그는 돈을 노리고 살해하려다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오히려 도와준 여자를 나중에 재회하는데, 군납업자와 결혼하여 부자가 된 그녀는 그의 흉악한 속셈을 알지 못하고 이런 소리를 한다.

“It’s an old story ― rags to riches. My luck changed after I met you.”(예로부터 그런 말 있잖아요 ― 고진감래라고. 당신을 만난 다음에 내 운명이 바뀐 거죠.)

두운법을 구사한 from rags to riches는 “미국의 신화(American Dream)”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이므로 꼭 알아둬야 한다. 본디 의미는 “누더기(rag) 신세에서 떼부자(rich)로”라는

정도가 되겠는데, 때로는 “대박을 잡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고생하여 자수성가를 이루다”라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from rags to riches만큼 대표적으로 미국을 상징하는 개념은 e pluribus unum(from many, one)이라는 라틴어 표현이다. “여럿에서 하나” 즉 “여러 민족이 함께 이룩한 하나의 집단”을 뜻한다. 자주 쓰이는 표어(motto)니까 꼭 알아둬야 한다.


● 이번주와 지난주 삽화가 서로 엇갈려 나갔습니다. 안정효 선생님과 독자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