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English ---/Have a Fun!

[안정효의 Q-English]‘버리지도 먹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

[안정효의 Q-English]‘버리지도 먹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
입력: 2008년 05월 14일 14:11:44
두운법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얼마나 자주, 얼마나 다양한 목적을 위해 일상에서 활용되는지를 알고 싶다면, 평상시에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두운법이 애용되는 실용적인 현장으로서는 공연이나 행사가 벌어질 때 인물이나 상품 따위를 소개하고 선전하는 상황을 손꼽겠다. 그러니까 혹시 어떤 행사에서 영어로 사회를 볼 기회가 생긴다면, 두운을 곁들인 이런 소개 방법을 잘 알아두었다가 써먹기 바란다.

레니(Lenny)에서는 야간업소의 진행자가 스트립쇼를 하는 여자(stripteaser=“옷을 벗어가며 약을 올리는 사람”이라는 뜻) 발레리 페린을 이렇게 소개한다.

“Here‘s the moment that you all have been waiting for, so without further ado, may we present Hot Honey Harlowe.”(여러분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되었으니, 더 이상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하고, 화끈한 아가씨 할로우를 소개하겠습니다.)

ado(야단법석, 소동, 노심초사)는 본디 중세영어 중에서도 북부 방언이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극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의 제목에 들어간 덕택에 지금까지도 죽지 않고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much ado about nothing을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두고 벌이는 많은 소동”인데, “공연한 법석”의 의미로 굳어버린 표현이니까 그냥 한 덩어리로 알아두면 편하다.

Hot Honey Harlowe(화끈한 아가씨 할로우)는 H로 두운을 이루는데, 하워드 휴스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 「비행사(The Aviator)」를 보면 시사회장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도 그와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

“Sultry Southern tigress Ava Gardner dazzles the room tonight.”(오늘밤에는 뜨거운 남부의 맹수 에이바 가드너가 이곳을 빛내줍니다.)

여기서 sultry southern tigress는 “암호랑이처럼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남부 출신의 여배우” 에이바 가드너를 지칭한다. 그리고 “화끈한”이라는 표현을 기자는 sultry(후끈한)라는 단어를 hot 대신 썼다. 물론 뒤에 나오는 단어 southern과 s로 두음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짚고 지나가자. 요즈음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중요한 문제”나 “어려운 난관”이라는 뜻으로 “뜨거운 감자”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쓰는 경우가 퍽 많다. 영어에서는 본디 흔한 표현인 hot potato에는 보다 절묘한 뜻이 담겼다.

프랭크 캐프라의 명작 「존 도우를 찾아서(Meet John Doe)」에서 존 도우(개리 쿠퍼)라는 영웅적인 가공인물을 만들었다가 오히려 자신에게 위협이 되자 서둘러 그를 제거하려는 편집국장에게 여기자 바바라 스탠윅이 따진다.

“Not me. I would make a deal with him. When you get hold of this kind of a darling baby, you don’t drop it like a hot potato.”(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그 사람하고 타협을 해야죠. 이 정도로 귀여운 아기(=소중한 보물)가 생겼다면, 뜨거운 감자처럼 던져버려서는 안되죠.)

“뜨거운 감자”에서는 drop(버리다, 포기하다)이 핵심적인 개념이다. 배고픈 김에 큼직한 감자를 집어들기는 했는데, 그만 너무 뜨거워서 “앗 뜨거, 앗 뜨거!” 소리만 지르며 깨물어 먹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좀 왜설적인 표현으로 “빼지도 못하고 박지도 못하는” 처지, 그것이 ‘뜨거운 감자’다. 그러니까 요즈음 사회문제가 된 아동성범죄나 정치인들의 부도덕성 같은 “민감한 문제(sensitive issue)”는 뜨거운 감자하고는 거리가 멀다. 영어공부에서는 이처럼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설익은 실력을 자꾸만 써먹으려고 하는 과시욕이 때로는 심각한 결함으로 작용한다.

성적인 암시가 담긴 두운법은 반항적 청춘영화 「볼륨을 높여라(Pump Up the Volume)」에도 등장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해적 방송의 디스크자키인 주인공 크리스천 슬레이터의 별명이 Hard Harry인데, “단단한 놈(잔뜩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의미함)”이라는 뜻이다. 이 애칭도 두운을 갖췄으며, HH가 다니는 학교의 이름은 Hubert H. Humphrey High(휴벗 H 험프리 고등학교), 즉 HHHH다.

각종 공연을 선전하는 간판에도 웬만하면 두운이 모습을 보인다. ‘수중발레(water ballet)’라는 새로운 분야의 영화에서 전무후무한 존재인 에스터 윌리엄스의 대표적인 영화 「백만불의 인어(Million Dollar Mermaid)」에서 공연장에 내건 광고문도 그렇다.

Wonder Woman of the Water

(물속의 경이적인 여인)

그리고 이 영화에 소개하는 어느 신문의 기사 제목은 Fight to Finish다. “끝까지 싸우다” 또는 “끝까지 분투하다”라는 뜻이다. “Fight to the End”보다는 두운을 썼기 때문에 한 뼘가량 더 고상해 보이는 제목이다. 막강한 ‘군사력(軍事力)’을 military strength라 하지 않고 military might라고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 계산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