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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Q-English]재치 넘치는 빗대어 표현하기

[안정효의 Q-English]재치 넘치는 빗대어 표현하기
입력: 2008년 10월 08일 15:15:43
신문로의 어느 돼지고기집 간판을 보니 옥호가 ‘돈이돈이’다. “돈(豚·돼지)이 돈(錢)이다”라는 뜻인 듯싶다. ‘돈’이 곁말하면서 두운까지 자동적으로 맞는 절묘한 표현이다. 어느 일간지의 기사 제목을 보니 “제철 만난 현대제철 ‘철 박사들’”이다. 역시 곁말의 묘기다. 그리고 어떤 전화 광고에서는 아버지가 “너 대통령 되면 나 뭐 시켜줄래?”라고 물었더니 일곱 살 아들이 “탕수육!”이라는 명답을 한다. 이렇게 우리말에서도 조금만 신경을 써서 둘러보면 곁말의 재치가 사방에서 앞다툰다.

‘히피가 된 변호사(I Love You, Alice B. Toklas)’에서는 초보 히피 피터 셀러스가 새로 단장한 집의 bar에 간판을 걸어 놓았는데, “Loading Zone”이라고 했다. loading zone은 본디 화물차나 기차나 항공기 그리고 선박 따위가 “짐을 싣는 곳”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사용된 곁말로는 “술 퍼마시는 곳”이라는 뜻이 된다. 속어로 load가 “한껏 마신 양의 술(jag)”이나 “엄청나게 많은 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문으로 확인해 보자.

‘육체와 영혼(Body and Soul)’에서 고민에 휩싸여 술을 잔뜩 마시고 길거리를 방황하던 권투선수 존 가필드가 집으로 찾아가자 여가수 헤이즐 브룩스가 걱정한다. “It’s the night before the fight, 3 a.m., and you’re loaded.”(지금은 시합 전날 밤 새벽 3시인데, 당신은 아주 곤드레만드레로군요.)

제목부터가 참으로 노골적인 희극영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How to Marry a Millionaire)’에서 마릴린 먼로가 돈많은 남자들의 행태에 대해 로렌 바콜에게 이런 도움말을 준다. “They’re getting more and more nervous, especially the loaded ones.”(남자들, 특히 엄청부자들은 점점 더 신경이 예민해지는 모양이에요.)

‘카이버 결사대(King of the Khyber Rifles)’의 원제에도 곁말이 담겼다. King이라니까 카이버 소총대(小銃隊)의 ‘왕’이라는 소리 같지만, 사실은 주인공 타이론 파워의 극중 이름이 ‘킹’이다.

‘겟 쇼티(Get Shorty)’에서는 대니 드비토가 유명한 배우 Martin Weir(마틴 위어)의 역을 맡았는데, 그의 자서전 제목이 Weir’d Tales다. “위어의 이야기들”이라는 이 제목은 weird tales(불가사의한 이야기들)를 겨냥한 곁말이다.

정말 촌스러우면서도 weird하게 감동적인 음악영화 ‘도시의 카우보이(비디오 제목임)’는 원제가 Pure Country다. “진짜 컨추리 음악”이라는 뜻과 “순수한 시골”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맞아떨어지는 기막힌 제목이다.

미래모험극 ‘바바렐라(Barbarella)’를 보면 Ping 박사가 pen을 달라고 하니까 천사 Pygar가 그의 날개에서 깃털을 하나 뽑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무슨 영문일까?

잉크를 금속 촉으로 찍어서 글을 쓰는 ‘펜’은 이제 옛시대의 유물이 되어서, 지금 아이들은 pen(펜촉)이 무엇인지도 모를 듯싶다. 그리고 pen이 생겨나기 전인 중세에는 사람들이 quill을 펜으로 사용했었다. quill은 꿩이나 닭 같은 조류의 깃에서 털이 가지런히 달라붙은 부분으로, 뼈처럼 단단하고 속이 빈 ‘대’를 뜻한다. 그래서 drive the quill이라 하면 “글을 써내려간다”는 뜻이고, ‘문필가’를 고상한 영어로 quiller라고 한다.

날개(wing)는 깃털(feather)로 이루어졌고, feather의 깃대가 quill이라는 뜻인데, plume 역시 ‘깃털’이라고 한다. 하지만 같은 깃털인 듯싶어도 영어로는 plume이라고 하면 feather나 quill과 조금 의미가 다르다. plume은 장식용 깃털의 의미가 강해서, 삼총사가 멋을 내려고 모자에 달고 다니는 그런 깃털을 plume이라고 한다. 사람에게는 달려 있지 않은 새의 깃털을 뽑아 달고 다니며 잘난 체하는 꼴이 우스워서인지 borrowed plumes(빌려온 깃털)는 “빌려 입은 옷”이나 “남에게서 빌린 지식”이라는 의미가 된다. 신정아 사건에서처럼 가짜 학위로 행세를 하거나 표절한 글을 내돌리는 행위, 그리고 성형수술을 한 얼굴이나 심지어는 짙은 화장을 한 사람도 모두 borrowed plumes 집단이라고 하겠다.

‘오스틴 파워스(Austin Powers: International Man of Mystery)’의 도입부에서는 명첩보원인 주인공을 영국 국방부 Cyrogenic Storage Facility(냉동 저장소)에서 되살려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여자가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Stage Five, evacuation begins.”

희극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첩보영화에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관객은 evacuation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피’나 ‘피난’ 또는 ‘후송’이라는 군대용어를 자동적으로 연상한다. 하지만 벌거벗은 마이크 마이어스는 변기를 향해 돌아서서 오랜 냉동기간 동안 몸속에 얼어서 축적되었다가 녹아내린 소변을 좔좔 쏟아낸다. evacuation에는 ‘배설’이나 ‘배출’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evacuation의 어간을 이루는 동사 vacate(비우다)는 자리를 비우고 “vacation(휴가)을 가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