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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Q-English]Q로 시작하는 단어 몇 개 알고 있나요?


[안정효의 Q-English]Q로 시작하는 단어 몇 개 알고 있나요?
입력: 2008년 04월 23일 13:42:20
요즈음 사람들이 하는 영어 공부, 특히 말하기를 위주로 하는 ‘생활영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혀를 잘 굴려가며 멋진 발음을 열심히 배우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영어 실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휘력으로 결판나고, 그 다음이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이다. “오, 예”나 “오 마이 갓”처럼 궁색한 단어 몇 가지밖에 모르면서 아무리 혀를 잘 굴려봤자, 예를 들어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는 과정 따위의 구체적인 문제에 관해 외국인과 대화를 하거나 한심한 한국 정치를 놓고 영어 토론을 벌이기는 힘겹다.

영어 실력, 그러니까 어휘력을 측정하는 방법은 많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Q로 시작하는 단어를 몇 개나 알고 있나 확인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단어만들기 놀이인 스크래블(Scrabble)에서는 Q라는 패쪽이 하나뿐이고, 점수도 매우 높다.

이 연속물의 부제 ‘Quips and Quirks and Quotations’는 세 단어가 모두 Q로 시작한다. Q로 시작하는 단어를 필자가 무척 많이 안다고 잘난 체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제목을 붙였다.

제목이나 대화에서 이렇게 같은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나란히 배열하는 문학적 기법을 ‘두운(頭韻·alliteration)’이라고 한다. 두운법은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도 자주 등장하니까, 영어로 말하기나 글쓰기를 하려면 꼭 알아두고, 가끔씩이라도 꺼내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까 어려운 Q로 두운법까지 구사했으니 ‘Quips and Quirks and Quotations’라는 제목은 정말로 대단한 언어의 묘기라고 하겠다.

이왕 잘난 체하는 김에 하나 더 자랑하자면, 몇 년 전에 필자는 영자신문 ‘코리아 헤럴드’에다 ‘Squints and Smirks’라는 고정란을 2년 동안 썼다. squint는 ‘곁눈질’이라는 뜻이고 smirk은 ‘능글맞은 웃음’으로서, 역시 S로 두운법을 사용한 이 제목은 “상대방이 화가 나지나 않았는지 슬금슬금 곁눈으로 눈치를 살피며 신랄하게 웃기는 얘기를 좀 해 보겠소”라는 장황한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 두운법은 이렇게 멋지다. 그러니 잠시 두운법을 배워보기로 하자.

영화 ‘캣치-22’에서는 훈장 수여식에 나체로 참석한 앨런 아킨 대위를 보고 여군 운전병이 키득거리자 오손 웰스 장군이 smirk 두운법으로 야단을 친다.

“What are you looking at? Get back in the car, you smirking slut.” (뭘 봐? 어서 차로 돌아가, 이 엉큼한 갈보 같으니라고.)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는 자만심이 가득한 케네드 브래노가 독자에게 답장을 쓰며 F로 두운법을 멋지게 구사한 quotation을 주인공에게 전해준다.

“Fame is a fickled friend, Harry.” (명성이란 변덕이 심한 친구라네, 해리.)

두운법이 퍽 어려운 기교처럼 여겨지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이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하다못해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직종”을 뜻하는 3D 즉 “dirty, difficult, dangerous(더럽고, 힘들고, 위험한)”이라는 표현도 훌륭한 두운법이다. ‘무적의 무법자’나 ‘이름난 이다도시’라는 식의 표현도 우리말 두운의 좋은 예가 되겠다.

하지만 번역을 할 때 이런 언어의 묘기가 그 빛을 잃는 경우가 많다.

MBC-TV에서 ‘정신병동의 뉴먼 대위’를 방영했을 때의 일이다. 많은 부하들을 출격시켜 죽게 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에 걸린 에디 앨버트 대령이 상담을 해주려고 찾아온 군의관 그레고리 펙 대위에게 두운법이 요란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I’m bored with being beleaguered by brainless benighted blockheads, and I’m bored with B’s.” (난 속이 비고 미개한 돌대가리들에게 시달리는 데도 넌더리가 났고, B에도 진저리가 났어.)

이 문장에서는 14개 단어 가운데 절반이 넘는 9개 단어가 B로 시작되었으니 B에 대해서 넌더리가 날만도 하다. 이런 식으로 쉴 새 없이 두운법을 구사하는 앨버트 대령의 대사를 우리말 ㅂ(B)으로 두운법을 살려 제대로 번역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대령의 말장난에 펙 대위도 같은 화법으로 응수한다.

“I didn’t come here for the purpose of providing a patronizing patient with a platterful of private pleasure.”

이 대사는 “잘난 체하는 환자에게 개인적인 즐거움을 한 사발 갖다 바치기 위해서 찾아온 건 아닙니다”라는 정도의 뜻이 되겠다. platterful은 ‘큰접시로 하나 가득’이라는 의미다. MBC에서는 이 말을 “하지만 허풍에 들뜬 환자의 흰소리나 들어주자고 헐레벌떡 달려온 건 아니니까요”라고 옮겼다. P로 시작하는 7개의 영어 단어 대신 ㅎ로 시작하는 우리말 단어들을 바꿔넣으며 애를 쓴 흔적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대령은 신이 나서 소리친다. “Bravo! Seven P’s!”

이것도 MBC에서는 “히읗 소리가 다섯 개나 들어갔어”라고 멋지게 돌려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