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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Q-English]“하느님 속셈은 알다가도 몰라”


[안정효의 Q-English]“하느님 속셈은 알다가도 몰라”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활용되는 allusion과 quotation의 대상 원전은 성경이 아닐까 싶다. <형사 콜롬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마지막 노래(Swan Song)’ 편에서는 어두운 과거 때문에 약점이 잡힌 가수 자니 캐시가 부흥회 전도사인 아내 아이다 루피노에게 쥐여살기가 지겨워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는 아내를 살해할 의도를 성경을 인용해가면서 은근히 내비친다. “I seem to remember a little Bible myself, Edna. Vengeance is mine, saith the Lord.”(성경 말씀이라면 나도 좀 알지, 에드나.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잖아.)

saith의 -th는 직설법을 만드는 고어체 접미사(suffix)다. -th는 동사의 3인칭 단수 현재형을 나타내는 -(e)s에 해당하여, says는 saith, has는 hath, does는 doth, works는 workth라는 식으로 쓴다. 시어체로도 자주 동원되는 고상한 어법이어서, 성경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같은 고전에서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에드거 앨런 포의 ‘천사 이스라펠(Israfel)’의 첫 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In Heaven a spirit doth dwell/‘Whose heart-strings are a lute’. ” (‘마음의 현이 음악을 울리는’ 성령이 천국에 살고 있나니.)
 

그리고 ‘흥행의 귀재’로 명성을 떨쳤던 로저 콜맨이 1963년에 만든 영화의 동명 ‘원전’이었던 또 다른 포의 우울하고 슬픈 시 ‘까마귀(The Raven)’에는 Quoth the Raven, “Nevermore.”(까마귀가 말했노라.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고.)라는 유명한 구절이 다섯 차례(48, 84, 90, 96, 102행)나 반복된다. 하지만 이 quoth는 3·단·현이 아니라, said(말하였다)라는 과거형의 고어체다. 이 단어는 1인칭이나 3인칭 주어의 앞에 나오며, 인용(어)문을 목적격으로 받는다.

-th는 ‘마지막 노래’에서처럼 격언이나 진리 따위를 인용할 때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잘난 체하는 사람의 현학적 화법을 비꼬는 표현으로도 자주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해놓고 만일 뒤에다 saith I 라는 말을 tag ending(말미)으로 붙이면, 웃기려고 어울리지 않게 어려운 문자를 쓰거나, 거들먹거리는 수탉 화법이 된다. “맹구 가로사되”에서 바보 맹구와 고어체 ‘가로사되’가 어울려 어떤 상승효과를 내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쨌든 ‘마지막 노래’에서는 남편 캐시의 도전에 전혀 기가 죽지 않은 전도사 아내가 해볼 테면 해보라는 자신감을 보이며 반박한다. “It is also written: the Lord works in the mysterious ways.”(성경에는 이런 말씀도 나오지. 주님이 하시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이 ‘성경’ 구절은 (as) the Chinese say(중국인들 가로사되)만큼이나 자주 인용되는 말미 표현으로서,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많은 종교인들이 입에 올려 핑계 없는 무덤 노릇을 여기저기서 열심히 한다.

‘요크 상사(Sergeant York)’에서도 순진한 시골 청년 개리 쿠퍼가 조운 레슬리의 변덕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 하느님의 핑계를 댄다. “The Lord sure do move in mysterious ways.”(정말이지 하느님 속셈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포도주 살인사건(Murder Under Glass)’ 편에서 피터 포크가 루이 주르당에게 “As the Chinese say, there’s more than one fish in the sea.”(바다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뿐은 아니라고 중국인들이 그러죠.)라고 한 대목에서, as the Chinese say는 정말로 중국에서 유래하는 표현이 아니라, “다들 그러는데, 어쩌고저쩌고”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하다고 설명했지만, “하느님의 속셈”도 역시 우리말 표현의 “그건 공자님 말씀”이라는 경우와 의미가 비슷하다.

<숀 코너리의 신문(The Offence)>을 보면 미성년 성추행범으로 잡혀온 이안 배넌이 숀 코너리 형사에게 “너도 똑같은 변태”라면서 약을 올린다. “Ah, like Confucius said: lie back and enjoy it.”(아, 공자님 말씀마따나, 이왕이면 발랑 누워서 즐겨야죠.)

lie back and enjoy it은 “주려면 아예 홀랑 벗고 줘라”고 하는 상스러운 우리말 표현과 같아서, “마지못해 도와주는 경우라도 이왕이면 확실하게 도와주라”고 하는 충고다. 물론 공자가 그런 천박한 소리를 했을 리는 없고, 공자까지 동원한 이 말 또한 “누구나 다 아는 소리”를 뜻한다.